종두법은 예방주사라고 보면 되고, 김홍집 내각이 계속됐다고 해서 김홍집이라는 사람이 내내 실권을 유지했던 게 아니라 그렇습니다. 김홍집은 친일파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강경한 반일도 아니었고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일본이 간섭을 했든 청국이 요구를 했든) "근대화" 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면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그가 시행한 개혁은 대부분 조선에 이로운 것들이었고,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러시아가 조선에 영향력을 확대하기까지 했죠. 이에 일본은 이대로 가다가는 조선을 러시아에 빼앗기게 생겼다고 판단하고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단번에 확대하기 위해 눈 딱 감고 미친 짓을 저지르기로 결정하는데, 이 미친 짓이 바로 을미사변입니다.
을미사변 이후 일본은 갑신정변에 실패한 이후 일본으로 망명 와 있던 인물이자 확실한 친일파인 박영효를 조선으로 돌려보내, 말은 김홍집 내각이지만 김홍집은 허수아비로 끌어내리고 박영효가 실권을 장악하도록 지원했습니다. 즉 을미개혁을 김홍집의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